경험의 풍요

현재를 희생하는 출산, 육아의 행복감 사이 고민이라면

blessyu 2023. 11. 17. 00:31
반응형

딱 5년 전, 11월, 태어난 지 12시간가량 된 신생아는 속싸개에 감겨 눈도뜨지 못하고 발꼬락을 꼼지락 거립니다. 너무 작고 연약해 만지기도 조심스럽습니다. 남편은 몇번을 손소독제만 짜서 비빌뿐 쉽사리 아기를 만지지 못합니다. 한참 동안, 거의 미동도 없는 너무작고 조그만 생명을 바라만 봅니다.

아기발


너무 작고 소중한 생명체, 커다란 울음소리를 듣고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다짐하게 됩니다. 이 아이를 꼭 지켜줘야 겠다고 말입니다. 엄마만 아는 미세한 움직임에도 웃음이나고 걱정을 하며, 그 어떤 감동적인 영화를 볼때보다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당장 앞에 보이는 현실로 가려질뻔 했던 행복

겪어보기 전엔 몰랐습니다.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기쁨을,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너무 겁을 먹었었습니다. 당장 잃을 것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삶의 필수인 커피, 시원한 한잔의 생맥주, 공포 영화, 모두 뱃속의 아기를 위해 참아내야합니다. 신혼 때 바싹 모아야할 월급도 육아휴직으로 반이 됩니다. 살림살이에 아기용품, 양육 비용이 추가돼 씀씀이는 배가 되는데 말입니다.

임신을 꼭 해야할까

가정과 회사에서 각각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됩니다. 더욱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더욱 빡빡해질 시간표는 버겁게 다가옵니다. 반면 아기로 인한 행복은 너무 멀어 아득했습니다. 아직 세상에 나지 않은 존재를 상상하는 것은 낯설었습니다. 아이를 갖는 기쁨을 어림잡아 봤지만 어떤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앞으로 수십 년 인생 행로를 크게 바꿀 수도 있을 결정을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었습니다.

출산을 더 힘들게 하는 문화

주변을 돌아봐도 그랬습니다. 유튜브를 열면 ‘금쪽이’가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나 혼자 산다’는 근심 걱정 없이 자유로운 영혼들이 보입니다. 불과 몇 년 전 마음 편히 걷던 번화가 곳곳에는 이제 ‘노키즈존’을 내걸어 놓은 업장이 수두룩합니다. 만원 지하철에서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이 비어 있는 광경은 단언컨대 본 적이 없습니다.

임산부배려석(출처:동아일보)


개인이 아기를 낳기 전에 상상하는 이 모든 명확한 상실과 아득한 행복을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면, 본인을 위한 ‘생존 본능’과 다음 세대를 위한 ‘재생산 본능’의 충돌일 것이다. 먹거리를 찾기 어려워 경쟁이 심한 곳에서는 생존 자체가 힘들어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울같은 인구 밀집지역을 예로 들수 있겠네요.

한국 출산의 현재

현재 한국 사회는 두 본능의 균형이 깨진 것이 명확합니다. 서울 기준 0.53명이라는 합계 출산율은 이를 수치화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산율 추락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말이 붙었습니다.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서, 집값이 비싸서, 독박 육아 때문에, 저녁이 없는 삶이라서, 영어유치원 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0세반 어린이집이 없어서, 아이가 아플 때 급하게 갈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문을 닫아서…. 대부분 생존 본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소아과(출처:SBS)

그러나 생각해봅니다. 이런 조건들이 지금보다 좋지 않았던 1960년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왜 6명에 달했을까. 개인의 생존 본능을 지켜주는 제도만 설계해 만든다면 한국 전체 출산율은 다시 올라갈까?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뒤

막상 직접 겪어 보니 한국 사회는 아기를 낳기 나쁘지만은 않은 곳이었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지원하는 정책은 곳곳에 마련돼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임신을 장려하고 육아휴직을 맘껏 썼습니다. 오픈런하지 않아도 되는 자그마한 소아청소년과는아파트 상가내에, 대학병원 소아과는 차로 30분 안밖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이 모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아기는 수시로 아파 응급실을 가기 일쑤였고 만삭이 되어서도 화장실도 갈시간 없이 회사일로 바빴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이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큰 행복과 기쁨을 밀어낼 정도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순간

그러니 혹시라도 지금 이 순간 가수 잔나비의 노래 제목처럼 주저하는 연인과 부부가 있다면, 부디 용기를 내 나아가길 응원합니다. 탯줄을 자르고, 연약한 10개의 손·발가락을 확인한 뒤, 포대기에 싸 품에 안는, 글자 그대로 행복에 겨워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반응형